[성준해준] 아주 사소한 연애물


“넌 내 어디가 좋아?”

“뭐?”



출근을 준비하느라 거울을 보면서 넥타이를 매고 있는 중이었다. 별 쓰잘 데 없는 걸 묻는다는 듯 돌아간 시선 끝에 이미 준비를 마치고 방문턱에 어중간하게 서있는 강해준이 보였다. 너 뭐 잘못 먹었냐? 라고 물으려다가 얻어맞을 것 같아서 그러는 넌? 하고 되물었다. 



“내가 너랑 2년이나 연애 비슷한 걸 하고 있긴 한데.”

“어.”

“모르겠어.”

“그게 꼭 이유를 말로 설명해야 되나? 눈 맞고 맘 맞고 몸 맞으면 하는 거지.”



쑥스러운 걸 물어서, 부러 더 투박하게 대답했다. 말 그대로 2년을 만났지만 활활 타오르지도 식지도 않고 늘 미지근한 온도의 연애를 지속 중이었다. 둘 다 사내놈들에다 살가운 성격도 아니고 하니 그냥 이게 당연하다 싶었는데. 그러게, 애초에 나는 쟤 왜 좋아했더라? 생각해봐도 바로 떠오르는 게 없다. 우린 어떻게 시작했던 거였지?









내 집에서 같이 밤을 보내고 내 차를 타고 출근하는, 평소와 다름 없는 수요일 아침. 조용하길래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강해준은 말없이 창 밖만 보고 있었다. 오른손을 뻗어 어깨를 툭 건드리자 멀건 시선이 따라붙는다.



“아직도 그거 생각하고 있냐?”

“어.”

“왜?”

“그냥 좀, 지루해서.”

“이제 나 질렸어? 이게 흔히 말하는 권태, 뭐 그런 거?”



괘씸하다는 듯 강해준의 손을 끌어와 손가락 끝을 약하게 깨물었다. 물론 섹슈얼한 의도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아픈지 아, 하고 신음하는 강해준의 잠긴 목소리에 어젯밤 침대 위에서 한껏 뒹굴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렇다고 하기엔 어제 너 엄청 좋아서 울고 불고…”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제 몇 번이나…”



그 입 닥쳐, 좀. 깨물었던 손이 그대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어? 야, 이러면 사고 난다. 투닥투닥거리다 회사 근처에 강해준을 대충 떨궈주었다. 같이 출근하는데도 늘 내외라니. 아마 강해준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사러 가는 걸 거다. 그리고 내 몫의 샌드위치를 사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떨궈 놓겠지. 같이 보낸 다음 날에는 아침 식사 따위 챙길 시간이야 없는 게 당연한데 자기는 원래 아침도 안 먹는 주제에 내가 굶는 건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매번 반복되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신경이 쓰이는 섬세한 일이었다는 걸 불현듯 깨달았다. 









동기들끼리 점심을 먹고 들어가는 길이었다. 커피 한잔 하자는 걸 거절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머지 않아 강해준이 옆에 섰다. 그렇게 커피 좋아하는 애가 웬일로? 아침에 많이 마셨어. 1층에 다다른 엘리베이터에 탄 건 둘뿐이었다. 평일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였더니 무리가 가긴 했는지 강해준이 피곤한 듯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걸 보다 나도 모르게 뻗어나간 손이 얇은 셔츠 위로 허리를 감쌌다. 골반이며 척추 있는 데를 꾹꾹 눌러주니까 손 떼, 누가 봐. 하면서도 딱히 밀어내진 않는다.



“보긴 누가 보냐. 우리 밖에 없는데.”

“씨씨티비.”

“쟤도 우리한테 별로 관심 없어.”



감싸고 있던 허리를 당기자 강해준이 딸려온다. 가까워지는 입술 위로 장난스레 꾹 입술을 누르자 질색을 하며 밀어내는 찰나 마침 타이밍 좋게 문이 열렸다. 야, 회사에서 이렇게 깜찍한 짓 하니까 우리 꼭… 닥쳐. 깨끗한 거 좋아하니까 양치도 안 하고 닿은 입술을 북북 닦을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제 자리로 걸어가는 강해준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압을 주어 주무르며 따라 걸었다. 



“이 정도는 괜찮잖아.” 

“아파, 살살해.”



아직 철강팀은 텅 비어 있는 채였다. 강해준이 자리에 앉았고 장백기의 의자를 쭉 빼서 나도 옆에 앉았다. 또 왜? 하고 묻는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질리도록 보던 얼굴이 새롭지도 않은데 오래도록 눈을 마주친 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너 보면서, 생각 중이야.”

“뭘?”

“네 어디가 좋은지. 네가 왜 좋아졌는지.”

“그래서 뭐가 생각나기는 하고?”



양치를 하려는지 강해준이 서랍을 뒤적거리다 일어섰다. 상황이 어색해서 달아나려 한다는 걸 붉어진 귀 끝을 보고서 알았다. 귀엽기는. 뭐라도 생각나면 퇴근하고 나서 말해줘야지, 생각만 했다.









오늘은 피곤해서 집으로 가겠다는 강해준은 결국 또 내 차에 앉아있었다. 둘 다 야근을 하느라 시간도 늦어진 탓에 저녁을 먹고 들어가네 마네 뭐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신호에 걸려 돌아보니 어느새 잠이 들어있다. 습관처럼 반쯤 벌어진 입술 새로 색색 내쉬는 숨소리가 샌다. 손가락을 넣어볼까, 또 얻어맞을 생각을 하다가 순하게 감긴 눈을 쳐다봤다. 넌 얌전히 자고 있을 때랑, 나랑 잘 때가 제일 예뻐. 장난처럼 건넸던 말도 생각이 났다. 근데 진짜로 예뻐 보이는 걸 보니 그게 영 빈말은 아니었나 보네. 푹 꺾인 고개를 좀 더 편안하게 기대게 해주고 조금 길어진 앞머리를 느리게 쓸었다. 동그랗게 보기 좋은 이마가 드러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구태여 티 내거나 생색 내진 않으면서도 행동이 섬세하고, 툴툴거리면서도 다정해서 네가 좋다.

알고 보면 허술해서 손이 많이 가는 것도.



“그럼 내가 너 챙겨줄 수 있잖아.”



맨 정신에 얼굴 맞대고는 하기 힘든 말을 뱉어보다가 괜히 마른 얼굴을 쓸어냈다. 아, 몰라. 나는 그냥. 



늘어져 있는 강해준의 왼손을 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내 손가락을 틈 없이 끼워 넣으며 생각했다. 

이 관계가 권태로울 지언정 부디 오래오래 지속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