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해준] 망고님이 다한 백기해준

 

 

망고님의 단편만화를 토대로 짧게 연성했던 백기해준. 망고님 4랑해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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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시간이 한참 지난 옥상은 인적이 드물었다. 봄이 온다는 소리가 무색하게도 해가 지니까 칼바람이 불어온다. 뭐라도 좀 걸치고 나올 것을. 백기는 뒤늦게 후회하며 몸을 움츠리다가 제 맞은편 난간에 기대어 선 해준을 보았다. 춥지도 않은가? 고개를 숙이고 입에 문 담배에 막 불을 붙이는 해준의 볼이 움푹 패여드는 모습을 보던 백기는 해준의 좁혀진 미간에서 진한 짜증을 읽어냈다. 일이 꼬이려면 끝도 없다더니, 거래처가 다된 계약 사항에 갑자기 코를 빠뜨렸다. 덕분에 원래대로라면 퇴근 시간 전에 진작 마무리되었을 일을 여태 붙잡고 있어야 했다. 담당자인 해준은 자신만 남아도 된다고, 먼저 퇴근하라고 말했지만 백기는 부득불 우겨서 야근을 자초했다. 도울 일이 없어도 옆에는 있고 싶었다. 간신히 떼쓰고 울고 빌어 해준과 사귀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지금은 머리 위에 꽃이 날려도 모자라건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애인이 저러고 있는데 혼자 집에 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추우면 먼저 들어가요.”
“괜찮은데.”
“담배도 안 피울 거라면서 여긴 왜 따라왔어요.”
“그거야 대리님이…”


그런 표정으로 가시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습니까. 차마 말은 못하고 백기는 눈치만 살폈다. 기분이 엄청 안 좋으신 거 같은데 뭘 어떻게 풀어드려야 하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백기가 안절부절하며 자신의 뒤를 쫄쫄 쫓아올 때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경 속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을 해준은 눈치채고 있었다.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부사수이자, 지금은 어쩌다 보니 제 연인이 된 백기는 본인은 어른스럽게 행동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보기보다 허술하고 귀여운 맛이 있었다. 저러고 있는 꼴을 보면 마치… 주인의 눈치를 보고 있는 큰 대형견 같은 느낌? 자기도 모르게 상상하다가 웃음이 나올 것 같아 해준은 고개를 돌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마른 연기를 뿜었다.


“저기, 대리님.”
“……”


꽉 막힌 사무실을 벗어나니 답답했던 속도 좀 숨통이 트이는 듯 했다. 이것만 피우고 내려가서 확실히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백기가 제 쪽으로 가까이 몸을 붙여왔다. 난간에 기대있던 터라 등이 살짝 뒤로 밀렸더니 백기가 왼팔로 제 허리를 단단히 감아왔다. 몸은 점점 틈이 없게 밀착되었다. 다리가 섞이고 서로의 배가 맞닿았다. 해준은 행여 불이라도 붙을까 담배를 쥐고 있던 손을 조금 멀리 떼어놓고서 말했다.


“장백기씨. 담배가 아직 남아서 위험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여기 아직 회사입니다.”
“그것도 압니다. 그래도 잠깐이라도… 기분 풀어드리고 싶어서요.”


어차피 지금은 보는 눈도 없지 않습니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백기의 두 눈이 곱게 감겼다. 입술이 맞닿기 전 고개를 조금 뒤로 뺐더니, 이번에는 허락을 구한다는 듯 백기가 눈을 뜨고 초롱초롱하게 자신의 눈을 마주 쳐다보았다. 꼬리라도 있다면 요란하게 흔들고 있을 게 눈에 보였다. 나 참, 어쩔 수 없군요. 누가 누구 기분을 풀어준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해준은 승낙한다는 듯 눈을 감았다. 얌전히 눈을 내리 감은 그 모습이 맘에 든다는 듯 백기가 작게 소리 내어 웃더니 해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짚고는 고개를 틀어 입술을 포개어왔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가벼운 버드 키스로 붙었다 떨어진 입술을 사이에 두고 해준은 살며시 눈을 떴다. 기분을 풀어주니 어쩌니 하더니 고작 이게 다야? 애도 아니고? 기가 막혀 내쉰 숨이 백기의 입술을 간지럽혔다. 그 덕에 눈을 떠 해준의 심각한 얼굴을 마주한 백기는 뭐가 문제냐는 듯한 얼굴로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후우, 장백기씨. 아직 가르칠 게 정말 많군요.


“분명히 말하는데, 당신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네?”


백기가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이번에는 해준이 백기의 셔츠 깃을 꽉 쥐고 당겨 먼저 입술을 맞붙여왔다. 간당간당 손끝에 매달려 있던 담배는 진작에 떨어트린 지 오래였다. 아까의 애들 장난 같던 것과는 확실히 차원부터 달랐다. 입술을 두드리는 혀 끝에 속절없이 백기의 입술이 열리고 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혀가 깊숙이 얽혔다. 아랫입술을 입술로 당겨 세게 물고 빨았다가 놓아주고 침입한 혀는 멋대로 입천장을 긁어오니 백기는 정신이 혼미해 해준의 어깨를 더 꽉 쥐었다. 백기는 능숙한 강약으로 자신을 리드하는 해준의 키스에 이성이 자꾸 달아났다. 우리 대리님은 왜 못 하는 게 없으신 거지? 키스도 이렇게 잘해서야… 진짜 좋아서 돌아버리겠네. 입술이 찰박거리듯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듣기 민망한 질척한 소리가 공기 중을 울렸다. 아아, 대리님. 숨을 쉬는 중간중간 입술의 틈 사이로 백기가 흥분에 못 이겨 으응, 하고 낮게 비음을 흘렸다. 정신 없이 서로의 입 속을 탐닉하는 동안 백기는 자신의 분신이 원초적인 자극에 서서히 흥분하는 것을 느꼈다. 배를 맞대고 있었으니 해준도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이 이상이면 정말 위험하다. 무슨 짓을 해버릴지도. 다행히 타이밍 좋게 해준이 입술을 떼어냈고 백기는 숨을 골랐다. 아… 저…. 그게, 대리님. 해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백기의 도드라진 바지 앞섬만 물끄러미 보았다.


“빨리 정리하는 게 좋겠네요.”
“아, 아! 네!”


어려서 그런가. 몸이 참 솔직하네. 백기는 옆에서 어쩔 줄 몰라 애국가를 중얼거리고 있었고 해준은 바닥에 떨어진 담배 꽁초를 보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주머니에 넣었던 담뱃갑을 열어보니 역시 아까 그게 마지막 돛대였다. 사둔 것도 떨어졌는데. 채 반도 피우지 못한 것을 내려다 보며 해준이 말했다.


“아, 역시 그게 마지막 담배였군요.”
“죄… 죄송합니다.”


아직도 진정이 안 된 건지, 아니면 부끄러워서 그러는지 옆에 선 백기의 얼굴은 화산 폭발 직전인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게 누가 덤비래? 아직 멀었네, 생각하면서도 확실히 아까보단 기분이 많이 풀려있었다. 들끓었던 화도 좀 진정이 된 듯 하고.


“담배… 사다 드리겠습니다.”
“그래주면 제가 고맙죠.”


아니, 같이 갈까요? 마실 것도 좀 사게. 같이 가자는 말에 혼이 날까 봐 겁먹었던 표정은 언제고 금방 얼굴에 화색이 도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애는 애였다. 풉, 귀엽네. 배고프진 않습니까? 네, 조금요.


“그럼 빨리 끝내고 늦은 저녁이라도 먹을까요?”
“네?”


술 한잔 해도 좋고. 우리 집에서. 어차피 내일은 주말이지 않습니까. 해준의 말에 백기의 얼굴이 다시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그게 뻔히 보여서 해준은 여유롭게 웃으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한참 멍 때리던 백기가 급하게 자신을 뒤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옥상문을 벗어나기 직전에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해준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음, 장백기씨.”
“네?”
“다시 피기 전에 한 번 더합시다. 그게 효율적이고 좋겠네요.”
“…?!?!?”


결국 해준의 말에 휘말려 다시 한번 진하게 키스를 나누느라 애써 가라앉혀놨던 것이 소용이 없게 되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돌림노래로 부르는 백기는 울상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겉으로 볼 땐 똑같은 무표정이었을지언정 나름대로 산뜻한 기분이 된 해준이 갑시다, 장백기씨. 이러다 집에 못 갈 것 같습니다. 하며 백기를 채근했다. 같이 옥상을 내려가는 길에, 아직도 목이 벌건 백기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제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걸어왔다. 저, 대리님.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요? 저기… 그러니까…


“오늘, 자고 가도 됩니까?”
“…그러던지.”


해준의 흔쾌한 대답에 백기가 다시 한번 입을 떡 벌렸다. 오늘 우리 대리님 왜 이러지? 사랑스러워서 나 죽으라고? 아, 심장 아파. 장백기 인생도 영 헛 살지는 않았구나. 진짜 무르기 없습니다? 백기가 거듭 강조하듯 묻는 말에 해준이 알았다며 손을 휘저었다. 가끔은 당근을 주는 것도 뭐,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