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준해준동식] 레몬의 시간


“나 결혼할 거다.”


하성준의 결연한 한 마디에 마셨던 술이 도로 역류할 뻔 했다. 여태 술 잘 마시고 나와서 이게 무슨 헛소리인지. 그러고 보니까 아까 마시는 내내 쟤네 분위기가 좀 싸하긴 했었지. 강해준은 연신 빈 속에 안주도 없이 술잔을 비워냈고 하성준은 줄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아무리 그래도, 뭘 잘못 들었겠지 싶어 눈을 바쁘게 굴려보는데 분위기가 영 심상찮다. 하성준은 난데없이 폭탄 같은 말을 내뱉었음에도 강해준을 뚫어지게 노려보는 중이었고, 강해준은 정작 아무런 말이 없었다. 뭐야, 이거. 신종 주정이냐? 어색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내 노력은 뒤 이은 강해준의 말에 아무런 소용이 없어졌다.


“내가 하라고 했어. 결혼.”
“야, 강해준.”
“결혼해야지. 언제까지 얘랑 나랑 이러고 살 거야.”


그래, 씨발. 네 말대로 선보고 아무 여자나 만나서 보란 듯이 결혼하면 되냐? 넌 헤어지자는 말을 왜 그딴 식으로 하는데! 하성준이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씩씩거리는 하성준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강해준의 얼굴은 아주 덤덤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그게 더 무서웠다. 반응이 없는 강해준에게 뭐라고 연신 욕을 지껄이던 하성준이 결국 화풀이하듯 엄한 쓰레기통을 걷어차고 자리를 떴고, 그 자리에 남은 건 나와 붙박인 듯 땅을 딛고 선 강해준 뿐이었다.


“형. 나 담배 좀.”
“어? 어...”


술집 앞 골목 구석에 쪼그려 앉더니, 끊고 나서는 생전 입에 대지도 않던 담배를 내놓으라고 하는 강해준에게 얼결에 담뱃갑과 라이터를 쥐여주고 나서도 지금의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동그란 머리꼭지를 내려다보면서 멍하니 생각했다. 강해준과 하성준의 무탈했던 몇 년 간의 연애를.


“너네 갑자기 왜 그러는데?”
“그냥. 만나고 헤어지는데 뭐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가.”
“지금 그런 거 묻는 게 아니잖아.”
“4년이면 이제 헤어질 때도 됐지. 막 아무나 만나고 다닐 그런 나이도 아니고, 결혼도 해야 되고.”
“하성준이 너한테 아무나였어? 너 그동안 쟤 때문에 얼마나 혼자...”
“그렇게 꼬치꼬치 물으면서 나 계속 긁을거면 형도 집에 가.”
“일어나, 일단. 너 취했어.”
“나 안 취했어.”


볼이 홀쭉하도록 필터를 빨아들이고 뿌연 담배연기를 내뿜는 강해준이 낯설다. 그래도 어쩐지, 평온을 애써 가장하고 있는 그 얼굴을 너무도 잘 알아서, 깨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네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 했다. 물론 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차피, 형한테는 더 잘된 거 아냐?”
“강해준. 너 진짜 그따위로밖에 말 못해?”
“아, 미안. 내가 진짜 취하긴 취했나보네.”


강해준은 제가 한 말이 스스로도 웃겼는지 바람 빠지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거렸다. 눈은 하나도 웃고 있지 않은 채로, 취기를 빌미로 서로를 할퀴는 말은 잘도 해댄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또 뭐가 되라고.


“내가 언제 너랑 뭐라도 되고 싶다고 했어?”
“......”
“너는... 너는 다 알면서 그러냐. 사람이 잔인하게.”
“똑같은 거야. 형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행복하길 비는 것처럼, 나는 쟤가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아이도 가졌으면 좋겠어.”
“.......”
“그렇게 내 눈앞에서 떳떳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게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야.”


그동안 충분히 행복했고, 나는 더... 바라는 거 없어. 강해준의 손가락에서 반쯤 타던 담배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꺼지지 않은 불씨에서 지옥 같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강해준은 더 깊숙하게 제 얼굴을 어둠속으로 묻었다. 그리고 나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그런 너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게 내 일이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네가 하성준을 사랑했으니까. 그렇게 서로를 방패로 기묘하게 안정적이었던 삼각형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비틀리기 시작했다.






1 김동식의 이름은 안 나왔지만 이것은 김->강->하
2 제목은 오렌지의 시간 2편을 기원하는 의미의 패러디(내용이랑 1도 상관없음)
3 진짜 내용은 쓰레기 막장드라마
4 와 진짜 이제 연성은 안되나봐.. 개소리 죄송합니다 무슨 내용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출에 의의를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