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준해준] 하강, 영양제, 성공적





“강과장 어디 갔어?”



불쑥, 파티션 너머로 성준의 얼굴이 들이밀어졌다. 최근 제 자리에 붙어있는 걸 몇 번 못 볼 정도로 해준은, 무지, 지나치게, 바빴다. 원래도 바쁜 애가 더 바빠지니 요즘은 한 집 살면서도 서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말세야 말세. 무슨 일인지 꽤나 험악한 표정으로 해준의 소재를 묻는 성준을 보며 괜히 눈치를 보던 백기가 강과장님, 잠깐 미팅 가셨는데요…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냐? 하고 또 심드렁하게 대답한 성준이 들고 온 뭔가를 해준의 책상 위에 턱 놓더니 성큼성큼 제 자리로 걸어갔다. 







무슨 세상에 지 혼자만 일하는 줄 아나. 너 없으면 회사 무너지지, 아주? 툴툴거리다 못해 잔뜩 꼬인 성준을 뒤로 하고 해준은 피곤한 낯색으로 서류를 뒤적였다. 주말인데 세상에. 이 화창한 날씨에 집에 틀어박혀서 또 일과 씨름을 하고 있다니. 이쯤이면 저거 병 아닐까? 지난 몇 년간 해준을 바로 곁에서 지켜봤지만 이런 부분은 정말이지 이해를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과장까지 승진하고 나더니 아주 일에 미쳐 살았다. 받은 만큼만 일 하는 거 아닌가? 아, 물론 저 새낀 나보다 많이 받지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을 저 따위로 하면서 지 건강을 챙기면 몰라. 맨날 셀프로 몸을 축내면서 일하는 걸 보니 성준은 말은 안 해도 속이 바짝바짝 탔다.



“너 어제 코피 쏟았다며?”

“빨리도 알았다.”

“외근 나가면 밥은 좀 쳐먹고 다니냐?”

“남이사.”



아오! 또 한 마디도 안 지지. 피곤에 절다 못해 쩔은 얼굴을 하고서는 고집스레 노트북을 두드리는 걸 보며 성준은 두 손 두발을 다 들었다. 너 진짜 이러다가 병 나. 괜찮아, 나 튼튼해. 니 얼굴 좀 볼래? 송장 치우기 싫거든? 너한테 치워달라고 안 할거야. 그리고 제발 너 할일 해. 티비를 보던지, 잠을 자던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에 빡이 쳐 마침내 성준이 노트북을 닫아버리자 해준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할 일도 많아 죽겠는데 저거까지 속을 썩이고 난리야.



“하성준.”

“왜.”

“애처럼 왜 이래.”

“나 니 애인이거든? 주말만큼은 너도 나한테 열과 성의를 보여야 할 의무가 있는 거거든.”

“바쁜 거 좀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 알잖아, 너도.” 

“나 귀찮아?”

“왜 사람 긁어, 자꾸. 너까지 이러면… 나 힘들어.”



충혈된 눈을 꾹꾹 누르면서 애써 달래듯 말하는 걸 보며 성준은 더 있다간 심한 말이라도 할 거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말없이 뒤돌아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에 또 한숨을 쉰 해준이 닫혀있던 노트북을 열었다. 손과 눈과 머리가 또 바쁘게 돌아갔다. 그 사이 어디쯤에 성준이 낄 자리가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그 날은 각방을 썼고 이후로 내내 냉전이었다. 그게 지난 주말이었다.







옥상에 올라가 담배 한 대 피우면서도 괜한 짓거리를 했나 싶어 성준은 머쓱했다. 그 새끼랑 3년 연애하는 동안 낯간지러운 일을 해본 적이 당연히 전무했다. 해준은 워낙 담백하다 못해 좀 매사 무심한 타입이었고 그러는 저도 그냥 딱 이 나이대의 아저씨 다 되가는 사내였으니. 연애 초부터 단맛보다는 쓴맛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냥 아무 맛도 없을 수도. 아니, 그냥 쟤랑 나랑 연애를 한다는 게 신기한 거였구나. 새삼 생각하면서 남은 꽁초를 뻑뻑 피웠다. 



점심시간, 평소보다 이르게 밥을 먹고 약국을 들렀다. 뭘 찾으시냐고 묻는 약사의 말에 그냥 애가 너무 피곤해하는데 뭘 먹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두서 없이 말했더니 적당한 제품들을 추천해줬다. 아무 생각 없이 카드를 긁고 나니 약국 봉투가 제게 안겨 있었다. 또 별 생각 없이 해준의 자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으나 외부에 미팅을 나갔다는 소리만 들었다. 보나마나 밥도 안 먹었겠지, 또. 먹을 것도 사다 놓으면 유난일 것 같아 그건 참고 그냥 자리 위에 약 봉투만 올려놓고 왔다. 무슨 영양제, 무슨 영양제. 뭔지도 모르는 것들을 잔뜩 샀으니 또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르겠네. 성준은 안 봐도 훤한 상황을 상상하며 뒷머리를 긁적이다 자리로 돌아왔다. 







오후 업무는 루틴하고 강해준의 자리는 아직도 비어 있었다. 괜히 파티션 너머를 흘끔거리다 커피 한 잔 타오는데 철강팀으로 막 들어오는 해준의 뒷모습이 보였다. 자기 없는 사이 무슨 이슈 있었냐고 장백기한테 묻는 것 같더니 제 책상 위에 놓여진 뭔가를 한참 내려다 본다. 괜히 제 풀에 찔려서 성준은 냉큼 자리에 앉았지만 뭔가 초조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긴장도 좀 되고, 괜히 손바닥 사이에 땀도 나는 것 같아 뜨거운 커피를 들이켰다. 



그 후로도 한참, 해준에겐 별다른 리액션이 없었다. 이거 내가 준 것도 모르는 거 아냐? 맥이 풀리는 기분에 성준이 헛헛하게 웃었다. 해준은 자리로 돌아와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고 시간은 잘도 흘러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어차피 제 시간에 퇴근 못하는 애인을 뒀으니 밥이라도 먹여야겠다고 생각만 하는데 모니터 화면 위로 뭐가 깜박였다. 사내 메신저에 새 대화창이 뜨고 철강 1팀 강해준 과장의 이름이 떴다.



ㅡ 영양제 너야?

ㅡ 뭘 이런걸 샀어. 쓸데 없이…



참 빨리도 반응한다. 그것도 딱 예상했던 대로. 그리고 보나마나 잔소리가 시작되겠네. 괜히 마우스만 득득 긁어대고 있는데 조금의 간격을 두고 또 하나의 메시지가 떴다.



ㅡ 잘 먹을게.



그 한 마디에 모든 게 사르르 녹았다. 잘 먹을게. 그 길지도 않은 네 글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던 성준의 얼굴에 슬쩍 웃음이 걸렸다. 나 참, 귀여운 새끼. 그럼 우리 잘난 애인님 식사나 챙기러 가보실까. 벌떡 일어난 성준의 시선 끝에 또 둥그런 해준의 뒤통수가 걸렸다. 그리고 그 곳으로 향하는 성준의 걸음에는 또 망설임이 없었다. 







강해준이 맨날 몸 축내면서 일하는거 빡치고 화나는데 차마 말은 못하고 혼자 속 끓다가 영양제 책상에 두고왔더니 한참뒤에 강해준이 메신저로 영양제 너야? 뭘이런걸 샀어. 쓸데없이.. 잘 먹을게. 라고 하는거 보면서 슬쩍웃는 하성준주세요 가 리퀘내용이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원고에 이와 아주 유사한 장면이 들어가있었다

내가 쓰고 내가 돌림노래 부르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