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율해준] 한강 와장창 하는 얘기 20150920

“한석율씨, 여기 지금 회삽니다.” 

“강해준! 아니 강대리님. 내 말 좀 들어요.” 

“너부터 놔, 이거.” 



비상 계단으로 끌려 들어오자마자 해준은 제 팔을 단단히 부여잡은 석율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놔주면 바로 문을 박차고 나갈 것을 알아 석율은 잡은 팔을 절대로 놓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차게 굳은 해준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밤새 연락도 무시하고 회사에서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거는 말에도 대꾸를 하지 않으니 결국 이런 방법뿐이었다. 석율에겐 지금 해명이 필요했고, 해준의 눈과 귀를 억지로라도 열어야 했다. 



“강대리님. 분명히 말하지만 오해였습니다. 그날은…” 

“한석율씨는 항상 저를 오해하게 하는 재주가 있네요.” 

“아, 좀 비꼬지 말고 제발!” 



석율의 짜증섞인 말에 이번에는 해준이 도끼눈을 떴다.  만 하루를 꼬박 넘어 마주치는 눈은 서슬이 퍼랬다. 석율은 침을 꿀떡 삼키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모드를 바꾸었다. 해준.. 아니 강대리님 그 날 연락 못 받고 본의 아니게 바람을 맞힌 건 그러니까 그게 어쩌고 저쩌고… 분명히 사실대로 고하는 건데도 변명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찜찜한 기분에 석율은 속이 바짝 탔다. 미주알고주알 떠들던 말던 제 손목의 시계를 한번 쳐다본 해준이 그래서 그 여자는? 하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을 때, 석율은 손사레를 치며 어우, 당연히 아무 사이 아닙니다! 하고 큰 소리로 당당하게 대답했다. 석율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도 해준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이어지는 해준의 침묵에 석율만 애가 달았다. 사람 불안하게 또 이러시네. 저기, 대리님. 앞으로는 이런 일 없게 제가 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해준의 무거운 입이 열렸다. 



“헤어집시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애초에 무리였습니다. 이쯤에서 헤어지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더 이상 할 말 없으니까 가보겠습니다. 길지 않았지만 한석율 씨도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사람 만나시길 바랍니다. 사무적이고 딱딱하다 못해 참으로 태연하게 이별을 고하는 해준의 말에, 그 무미건조한 표정에 석율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야, 아니 강해준씨, 지금 뭐라고 하신 거에요? 누구 맘대로 헤어져?” 

“못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뭐를, 아! 이런 식으로 사람 자꾸 돌게 만들 거야?” 

“못하겠어. 내가 너무 힘들어.” 



너랑 사귀는 거. 너무 지치는 일이라고. 해준의 대답에 이번에는 길길이 날뛰던 석율의 힘이 쭉 빠졌다. 내내 저렇게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 어쩌면 사귀기 시작한 날부터 이별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복잡한 머릿속에서 갖가지 생각들이 둥둥 떠다녔을 때 해준이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았다. 



“니가 노말이라서 안된다고 했지.” 

“......” 

“처음부터 내 말 들었으면 좋았잖아.” 



서로 상처받기 싫으니까 이쯤에서 그만해요. 그럼 바쁘니까 먼저 가보겠습니다. 비상 계단 문이 열렸다가 다시 한 번 세차게 닫혔다. 석율은 황망하게 닫힌 문만 바라보다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어떻게 당신을 가졌는데, 이렇게 쉽게 도망가려고 해. 허탈함에 저도 모르게 작게 소리 내어 웃던 석율이 점점 표정에서 웃음을 거두었다. 일자로 다물어진 입술 사이로 깊은 한숨이 배어나왔다. 안 돼. 이렇게는 못 놔줘. 꽉 쥔 주먹 사이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해준은 이리 쉽게도 자신을 벗어나버렸다.  




예전부터 단문으로 쓰려고 써놨다가 처박은 글인데 도저히 안 쓸 것 같아서 그냥 여기에 버린다.. 한석율을 너무 사랑하지만 그런 한석율한테 먼저 지쳐버려서 헤어지자고 하는 강해준 얘기였음. 노말이랑 사귀었다 크게 데인 전적도 있고 한석율이 애초에 무거운 사람은 아니었으니 사귀는 내내 불안에 떠는 자신이 너무 싫었을 것이다. 근데 거기에 한석율이 믿음을 못 줬기 때문에 더 이상은 안된다고 먼저 헤어지자고 선빵 날리는데 과연 한석율이 다시 잡을지는 미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