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하던 두 눈에는 실핏줄이 터져 있고 바짝 마른 입술은 벌리다 찢어졌는지 피가 말라붙어있다. 사막같이 건조한 얼굴엔 피로감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뻣뻣한 자세로 모니터를 노려보는 모습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시간은 오후 10시를 막 지나갔다.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나머지 한 손에는 종이백을 들고 있는 백기가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와 해준의 단정한 뒷모습을 번갈아봤다. 이럴 줄 알았지. 마우스 딸깍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텅빈 사무실에서 해준은 제 인기척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짧은 한숨 소리와 함께 해준의 옆으로 다가간 백기가 들고 있던 종이백을 책상 위로 내려놓았다.
"먹어요. 오늘 점심도 안 먹었잖아."
백기의 말에도 해준은 부러 무시하는 사람처럼 앞만 보고 있었다. 백기에게선 찬바람 냄새가 났다. 익숙한 로고의 종이백 안에는 해준이 좋아하는 따끈한 커피와 샌드위치가 들어있을 것이다. 야근할 때면 몇 번 사다주곤 했었던 거라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몇 시간 전 퇴근한 사람이 지금에 와서 이 짓을 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강대리님."
불러도 대답이 없는 해준의 어깨 위에 백기의 손길이 느껴졌다.
"강해준."
이번엔 이름을 불러오는 목소리가 그렇게도 다정할 수 없어서 해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간신히 붙어있던 피딱지가 터지고 찝찌름한 비린맛이 올라왔다.
"나한테 시위해요? 말라죽는 꼴 보고 괴로워하라고?"
백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말속에는 뼈가 있었다. 애초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간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해준은 어깨에 놓여진 차가운 손을 치워냈다.
"장백기. 너야말로 이러는 이유가 뭐야."
못참겠다는 듯 백기를 향해 돌아선 해준의 잠긴 목소리엔 고저가 없었다. 꼭 저러다 목감기가 크게 오던데. 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백기가 무의식적으로 해준의 말라붙은 입술에 손가락을 뻗었다.
"아.."
채 닿지도 못하고 밀쳐진 손을 미련 없이 내린 백기가 허무하게 웃었다. 해준은 그런 백기를 보았다. 여전했다. 좋아하는 하얀 얼굴, 좋아하는 부드러운 미소, 좋아하는 듣기 좋은 목소리, 모든게 같았지만 단 하나가 달랐다.
"내가 잠을 못자는지, 밥을 못먹었는지 그런걸 니가 왜 신경쓰는데."
내가 불쌍하니? 이제와서 안쓰러워? 해준의 날선 목소리가 백기를 할퀴었다. 그리고 그 자신조차도. 입에서는 자꾸만 상처가 터진다.
"정신차려, 장백기. 우리 헤어졌잖아."
그와 나 사이에 단 하나 달라진 사실. 장백기는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 더 이상, 아무 것도.
"그렇게 버려놓고 왜 자꾸 흔드는데."
해준의 지친 목소리에, 헤어지자고 했던 그 날처럼 백기의 얼굴에도 피곤이 뿌옇게 내려앉았다.
140자도 모으니까 꽤 된다는 걸 알게 됨.. 근데 왜 이게 다야? 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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