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서 맞는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갑작스런 혼수장만으로 인해 신혼이고 뭐고 없었다지만 무사히 첫 아이 진이 태어나서도 곧바로 또 육아에 정신 없이 매달리게 된 해준을 보며 그래도, 적어도 오늘만큼은 로맨틱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육아휴직으로 인해 집에서 홀로 갓난 아이와 씨름하고 있을 해준을 생각하며 성준은 퇴근길에 집 근처에서 장미꽃 한 다발을 샀다. 그리고 또 뭐를 해야 하지? 결혼하기 전 연애를 할 때에도 워낙 담백했던 관계라 이런 낯간지러운 일은 성준으로써도 해본 적이 전무했다. 기념일이니까... 케이크를 사야겠다. 단순한 의식의 흐름에 그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동네 제과점이었다. 강해준이 뭘 좋아했더라? 애초에 이런 걸 먹긴 했던가. 의심하면서도 적당한 사이즈의 생크림 케이크를 골랐다. 초는 몇 개 드릴까요? 하는 물음에 큰 거 한 개만 주세요. 하고 대답한 성준이 꽃다발을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괜히 제 옷만 쓱쓱 문질렀다. 좋은 날이신가 봐요. 케이크 박스에 테잎을 붙이며 건네는 주인의 말에 성준이 아 예에, 하며 머쓱하게 대답을 하고는 포장된 케이크를 들었다.
한 손엔 붉은 장미 꽃다발,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에는 케이크 박스를 든 성준이 현관문 앞에 섰다. 비밀번호를 누르려 해도 손이 모자란 지라 한참을 낑낑대는데도 혹시나 아이가 잠들었을까 싶어 쉽사리 초인종을 누르지 못했다. 지 엄마 얼마나 고생시키려는지 유독 잠투정이 심하고 엄마 품을 못 떠나는 진이 때문에 해준의 눈 밑이 늘 피곤으로 물들어 있는 게 생각나 안쓰러웠다. 오늘은 부디 엄마 말 좀 잘 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는데 아이 울음소리는 커녕 거실이 조용하기만 했다. 발끝에 힘을 주고 조용조용 까치발로 들어가 손에 든 것을 식탁 위에 놓아둔 성준이 아기 방으로 꾸며둔 서재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기 침대 옆, 바닥에 깔아둔 푹신한 요 위에서 아이와 같은 자세로 고롱고롱 잠들어있는 해준을 발견했다. 이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인지. 성준은 색색 고운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제 사람 둘을 보니 속이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것이었다. 행복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런 거겠지. 그대로 옷 벗을 생각도 못하고 해준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아 앞머리를 가만가만히 쓸어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손 위로 막 잠에서 깬 해준의 따뜻한 손가락이 닿아왔다.
왔어?
소리도 못 내고 벙긋거리는 해준의 입술 위로 성준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애 보는데 뭐 하는 거야. 가볍게 타박한 해준이 깊게 잠든 아이를 살피고는 고갯짓을 했다. 방문을 닫고 나올 때까지 혹여나 아이가 깰 까봐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말도 못할 정도였다. 해준은 아직도 피곤한 낯 색을 하고 가볍게 하품을 하다가 식탁 위에 놓인 것들에 시선을 옮겼다. 뭐야 저건 다? 하고 묻는 해준의 뒤에 서서 어깨에 제 턱을 얹은 성준이 가볍게 해준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말했다. 오늘 우리 결혼 기념일이잖아. 1주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지 성준의 말에 해준이 아아, 벌써? 하고 놀란 기색을 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생활이라 달력을 볼 생각도 못했었는데 정확히 1년전의 오늘이 성준과 제가, 아니 이미 뱃속에 있던 아이와 함께 평생을 다짐했던 날이었다.
사귈 때도 안 해주더니 웬 깜찍한 짓이야?
안 해주면 또 무슨 구박을 하려고. 밥도 안 줄 것 같아서.
알긴 아네.
성준의 농담 섞인 말에 해준도 장난스레 대답했다. 끌어안은 배를 문질러오는 성준의 손을 떼어낸 해준이 배고프지? 얼른 씻고 와. 밥 차려 줄게. 하고 말하는 것에 성준이 다시 한 번 해준의 허리를 양 손으로 꽉 끌어안았다. 뭐해? 하고 묻는 해준은 아랑곳 않고 성준이 해준의 뒷목에 길게 입맞추며 속삭였다.
나 지금 먹고 싶은 거 따로 있는데.
뭐.
여보, 해준아, 자기야. 우리 둘째 만들러 갈까?
미쳤어? 하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러고 보니 애 재우느라 최근엔 뭘 제대로 해본 기억이 없었다. 입술을 맞대고 뭐라도 해보려고 하면 애가 빽빽 울거나 그게 아니면 해준이 피곤해서 먼저 뻗어있기 일쑤라. 성준은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해준의 헐렁하게 늘어지는 면 티셔츠 한쪽을 끌어당겨 드러난 어깨 위를 장난스럽게 깨물던 성준이 나머지 한 손은 옷 속으로 집어넣어 홀쭉한 배를 쓸었다. 임신했을 때 빵빵하게 부풀었던 배가 어느새 이렇게 되었을까. 사람의 몸이란 게 이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연신 뒤며 앞을 자극하는 손과 입술에 해준이 몸을 뒤틀었다.
성준아, 씻고 와.
씻고 오면 해줄 거야?
진이 깨면 어떡할 건데.
걔도 동생 생기길 바라지 않을까?
아, 하성준. 너 진짜.
급습하듯 귓불을 깨무니 해준이 고개를 젖히다가 소리가 새려는 제 입을 급하게 다물었다. 난 몰라 진짜. 몇 번 성준의 팔을 투닥거리던 해준이 성준을 끌고 안방으로 향했다. 제 걸음을 따라 뒤에 한 몸처럼 꼭 붙어서 뒤뚱거리는 커다랗고 철없는 남편을 보며 애를 둘 키우고 있는 거지 내가, 하며 체념하듯 중얼거리던 해준이 안방 문을 꼭 잠갔다. 덜컹, 하고 문고리가 잠기자 마자 성준이 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좀, 천천히... 성준아.
나 급해. 깨기 전에 끝내야지. 이번에도 깨면 내 아들이지만 정말 화낼 거야.
뭐라는 거야 진짜. 아..! 깨물지 마! 아프다고.
정신 없는 몸짓에 발이 꼬여 침대로 털썩 눕혀지고, 제 위에 올라탄 성준이 마음껏 제 몸을 물고 빠는 동안에도 해준은 건너편에서 행여 무슨 소리가 나진 않을까 신경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해준의 티셔츠 안에서 제 머리를 쏙 빼낸 성준이 그게 못마땅한 듯 해준의 볼을 두드렸다. 나한테 집중 좀 해줘, 지금만큼은. 아이가 투정부리듯 댓 발은 튀어나온 성준의 입술에 이번엔 해준이 선심 쓰듯 제 입술을 겹쳤다. 그리고 성준의 손을 끌어 제 바지춤으로 이끌었다. 건강하게 반쯤 발기한 것이 성준의 손에 닿아왔다. 마치 저도 집중하고 있다는 듯한 그 기세에 성준이 입술 사이로 낮게 웃음을 흘렸다. 채 떨어지지 않은 젖은 입술 사이로 성준이 웅얼거렸다.
해준아, 사랑해.
어.
그게 다야?
...나도.
여보, 진이 엄마. 우리 오래오래 행복하자.
그래. 진이 아빠.
그쯤 서로는 아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였다. 행복이란 게 뭐 별거겠냐고, 그냥 지금처럼만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는 매년을 축하하고 기념할 수 있는 서로가 되었으면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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